양혁준(가천대 길병원 응급의료센터장)
[라포르시안]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는 지난 2011년 9월 23일 첫 운항을 시작한 이후 14년 간 약 1800번 가까이 하늘을 날며 병원이 없는 인천 섬마을 주민들의 응급의료 상황을 책임져왔다. 그동안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는 중증외상, 급성뇌졸중, 급성관상동맥증후군, 심정지, 대동맥파열, 위장출혈, 호흡곤란 등 중증응급질환자를 비롯해 해상에서 조업 중 발생한 외상환자까지 책임져왔으며, 인천 지역 외 충남권 등 타 지역 이송 환자의 생명도 상당수 살렸다.
가천대 길병원에 따르면 닥터헬기가 서해 도서지역의 생명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양혁준 응급의료센터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대한심폐소생협회, 인천응급의료지원센터장,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양혁준 센터장은 지난 2011년 가천대 길병원이 닥터헬기를 도입 당시부터 현재까지 항공의료를 책임지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최근 양혁준 센터장을 직접 만나 닥터헬기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응급의료의 패러다임 등을 들어봤다.

-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최초로 닥터헬기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 닥터헬기를 도입할 당시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유일하게 닥터헬기가 없는 나라였으며, 실제로 중증외상센터 등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인프라도 부족했다. 소방헬기가 일정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응급 환자만을 전담할 수 있는 닥터헬기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특히 가천대 길병원이 위치한 인천 지역은 대표적 의료 취약지인 도서 지역이 상당히 분포돼 있다. 이 같은 취약지에 있는 중증응급환자는 사실은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도서지역 주민들의 생명도 지키고, 중증응급환자의 적절한 시간 내 이송을 통한 치료를 위해 닥터헬기 도입을 적극 추진하게 됐다.
- 도입 초기 경험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 닥터헬기를 도입하기 위해선 착륙장과 계류장 등 관련 인프라가 필요한데 국내에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관련 제도나 법이 전혀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병원 옥상에 임시 착륙장 허가를 어렵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적 근거가 없어서 병원 옥상에 닥터헬기가 내리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렸다. 또 하나는 민원이었다. 닥터헬기가 내리고 뜨는 과정에서 소음과 강풍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운항을 시작하면서 운항 통제실이나 인천시청 담당 부서에 민원이 많았다. 외국은 병원이 한적한 곳에 떨어져 있어서 닥터헬기 관련 민원이 상당히 적었던 반면, 우리나라는 대학병원이나 권역외상센터 등이 큰 도심 내에 있다 보니 닥터헬기가 뜨고 내리는 데 위험이 많고 이에 따르는 어려움이 굉장히 많았다.
- 닥터헬기 탑승에 대한 의료진의 두려움은 없었나.
= 헬기 탑승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자를 구하고 응급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탑승 의료진의 안전이 담보돼야만 한다.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안전 기준을 상당히 강화했다. 헬기의 수령을 비롯해 운항조건 등 여러 환경적 조건을 꼼꼼하게 지침으로 만들고 엄격하게 적용했다. 아울러 탑승 인원에 대한 교육과 훈련도 강화하면서 안전에 대한 걱정을 많이 불식시켰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닥터헬기에 타면서 의료진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 가천대 길병원이 닥터헬기를 도입한 지 14년이 지났다.
= 출혈을 동반한 중증외상 환자는 시간이 곧 생명이다. 이송시간을 30분 정도로 줄이면 사망률을 50%로 낮출 수 있다. 이 점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 일반적으로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환자 등 출혈이 발생한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할 때 한 시간 이내에 수술이 들어가야 그 환자가 살 수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수술을 해도 환자가 회복을 못하고 사망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닥터헬기를 도입하면서 그 시간을 한 30분 이상 당기고, 현장에서 이송을 시작하면서 병원에 수술을 준비시키다보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긍정적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중증외상뿐 아니라 심뇌혈관질환 환자들도 일차적으로 현장에서 처치하고, 시간을 줄여 이송하다보니 장애 후유증이 30% 이상 줄었다. 예전에는 살릴 수 없는 환자를 살렸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다. 그렇게 살린 환자가 몇 명인지 세보지는 않았지만 환자 한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나. 닥터헬기는 통계로 보이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닥터헬기 도입은 국내 응급의료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닥터헬기 도입은 응급의료를 선진화하는 데 굉장히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닥터헬기는 단순하게 시간을 줄여주는 것뿐 아니라, 헬기가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응급 재난 현장에 의료진을 투입하고, 환자를 후송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응급의료는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혜택을 받아야 하는 국가적 안전 시스템이다. 그런데 섬에 산다는 이유로 응급의료의 혜택을 못 받는 현실은 국가적으로 관련 시스템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인데 닥터헬기가 이런 미충족 수요를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시 옹진군 대이작도나 덕적도는 병원이 없다. 전에는 중증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소방헬기로 이송하거나, 환자가 행정선을 타고 뭍으로 나와야 했다. 그런데 닥터헬기가 도입되면서 해당 주민들에게는 절대적 보호막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닥터헬기는 의료 취약지 주민이 대도시 주민과 대등한 혜택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국가적 안전 공공의료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 닥터헬기 의료진은 일반 응급실 의료진과 차별화된 전문성이 필요할 것 같다.
= 그렇기 때문에 닥터헬기 탑승 의료진에 대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보수교육과 정기 교육은 하고 있지만, 치료에 대한 성과를 높이기 위해 더욱 심화된 전문화 교육이 개발돼야 한다. 닥터헬기 탑승 의사는 기본적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해당이 되고, 응급구조사나 간호사도 3년 이상 대학병원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지만 탑승 자격이 주어진다. 닥터헬기 내에서 이뤄지는 의료 행위는 의료기관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보다 더욱 고도화된 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협소한 공간에서의 응급의료 시술이나 치료가 가능하게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 맞게끔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은 탑승해서 할 수 역할이 많지 않다. 일단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더 강화해서 직역별로 교육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모두가 모여서 했는데, 응급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조종사 등 각 직역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
- 현장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나서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구급차로는 도저히 이송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닥터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하는데 이 점이 굉장히 힘들다. 고속도로 주변에 내릴 수 있는 데가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인터체인지 인근의 공터에 내릴 수는 있지만, 환자를 위해선 사고 현장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도로나 도로 가에 내려야 하는데 현재 그 부분이 어렵다. 중앙분리나 도로 가의 가로등 같은 것들이 큰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도로공사 또는 도로 설계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도로를 만들 때 법적으로 지점마다 조그만한 공터를 만들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안 돼 있고, 도로를 만들 때 그런 것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또 한가지, 예를 들어 섬으로 가도 환자가 발생한 가까운 곳에 못 내린다. 인계점을 더욱 확보해야 한다. 현재 닥터헬기가 도달하는 곳의 인계점이 한 70~80곳 정도 된다. 일본은 학교 운동장에도 내리고 농로 옆 공터에도 내린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 많은 700~800곳의 인계점이 있다. 그래야 닥터헬기가 현장으로 직접 가서 환자를 구조하고 구급활동을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잘 안 된다. 닥터헬기나 의료진들의 고도화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과 관련 시스템의 강화가 필요하다.

- 국내 닥터헬기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 닥터헬기에 탑승하는 의료진들의 전문성 고도화를 위한 국제적인 인증 자격이 있다. Doctor Flight이나 Nurse Flight 등이다. 우리나라도 국제적 자격에 맞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서 닥터헬기 인증 전문의나 닥터헬기 인증 간호사와 같은 자격을 부여하면 해당 의료진도 자부심이 생기고 전문성도 더욱 담보할 수 있을 것 같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관을 통해 이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닥터헬기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NPO법인인 병원헬리콥터 네트워크(HEM-Net)에서 관련 지침도 만들고, 법률 개정이 필요하면 국회에 건의도 한다. 정부에서 인정하는 전문가 기구라고 보면 된다. 정부에서 전문가 기구를 통해서 닥터헬시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국가 공공의료의 핵심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를 통해 준비는 하고 있는데, 조금 더 체계화된, 공공의 지원을 받는 민간 기구를 만들어서 닥터 헬기 응급의료시스템을 더 안정시키고 발전시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