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수(전 한국룬드벡 대표)

[라포르시안] “누군가에게 약은 단순한 제품이지만, 누군가에겐 생의 마지막 희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환자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의약품이 환자의 필수약이 됐을 때,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습니다.”
작은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글로벌 제약사 한국지사 대표까지 오른 오필수 전 한국룬드벡 대표. 지난 24년간 한국룬드벡을 이끌어 온 그는 올해 3월 정년을 맞아 대표직을 내려놨다. 그는 지난 35년의 제약 인생을 '도전'과 '신념' 그리고 ‘환자’라는 세 단어로 압축했다. 라포르시안은 오필수 전 대표를 만나 그간의 커리어 여정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들어봤다.
“현장에서 배운 기본, '환자 중심' 철학이 됐다”
오 전 대표의 커리어 출발점은 대형 다국적 제약사가 아닌 작은 국내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제약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건강과 생명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첫 직장에서 병·의원과 약국을 직접 방문하면서 제품이 어떻게 처방되고 환자에게 전달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체험할 수 있었죠.”
오 전 대표는 이 시기를 ‘기본기를 몸으로 배운 시절’로 기억했다. 고객과의 소통 방식,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제품이 환자의 손에 전달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제약은 결국 사람을 위한 산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
그는 35년의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에빅사’의 재출시를 꼽았다. 이 역시 환자 중심이라는 자신의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에빅사의 주성분는 한국에 이미 다른 적응증 치료를 위해 발매된 적이 있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던 제품이었습니다. 매출도 없었고 인식도 낮았죠. 그런데 새로운 임상 데이터를 통해 중등도-중증 알츠하이머병치매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새로운 적응증으로 허가받아 국내 도입을 위한 어려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 전 대표는 수 년의 허가와 약가 등재 과정을 거쳐,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에빅사가 출시됐다고 전했다.
“이제 에빅사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약이 됐습니다. 보호자들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 경력 중 가장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그는 경력 동안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으로 ‘환자 중심’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어도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일은 반드시 추진했습니다. 그런 결정이 결국 회사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환자를 위한 약을 제도권에 안착시키기 위해 직원의 역량 강화에 기반한 조직 성장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
“한국의 보험약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본사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설득해서 한국에 도입하려면 내부 직원들의 역량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내 교육뿐 아니라 본사 교육에도 적극 참여시켰고, 내부 코칭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했습니다.”
한국 시장의 성장성과 가능성을 매출 수치로 증명하며 본사에 적극적으로 설명했고, IQVIA 자료와 시장 조사 데이터를 근거로 삼아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한국은 룬드벡 내 ‘주요 11개국 지사’ 중 하나로 선정됐다.
리더십에 있어 그는 팀원들의 성장을 최우선에 두었다. 해외 지사 근무 기회를 제공하고, 본사 직원의 한국 파견도 추진하며 글로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다.
“글로벌 환경은 자연스럽게 조직을 키웁니다. 저는 신뢰와 소통을 기반으로 수평적 조직 문화를 추구했고, 특히 코칭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모든 임원이 1년 코스의 코칭 교육을 이수했고, KPC(공인 전문 코치 자격)를 보유한 임원도 생겼다. 그는 ‘코칭형 리더십’을 통해 조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신입사원들에게 ‘호기심과 배움의 자세’를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기술은 빠르게 바뀌고 치료법도 매일 발전합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질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중심에 둬야 합니다. 이 산업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류의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어 글로벌 무대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화적 포용력, 지속적 학습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더로서 중요한 요소로 신뢰, 소통, 성장 기회 제공, 동기부여를 꼽았다.
“구성원을 믿고, 실수할 기회를 주고, 도전하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명확한 방향성과 피드백, 그리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구성원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입니다.”

“제약은 생명을 살리는 일, 35년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길 걸을 것”
그에게 제약 인생 35년을 마무리하는 감회를 물었다.
“성취감과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새로운 기대가 더 큽니다. 룬드벡을 한국에 설립했고, 지금은 정신건강의학과와 신경과 영역에서 중요한 회사로 만들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정년 이후에는 컨설팅과 코칭을 통해 후배들을 돕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약의 길을 택할 겁니다. 제약 업계는 도전적이고, 사람을 성장시키며,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을 합니다.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사람을 성장시키고, 환자를 위하는 이 일이야말로 제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의미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선배 제약인으로서 현장의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산업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연구, 생산, 마케팅, 유통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이 제약산업을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도전과 윤리적 성장, 그 길 위에서 늘 환자를 중심에 두길 바랍니다. 항상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며,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