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료 거버넌스 혁신 위해 '보건부' 신설해야"
"분절적 의료·복지 제공체계를 통합하는 정책 방향에 역행"

[라포르시안] 지난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의료계를 중심으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의료정책을 전담하는 ‘보건부’를 분리·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6.3 대선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분리해 '보건부'를 신설해야 한다는 정책공약을 제시했다. 지금의 보건의료 정책 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정치적.관료적이며, 전문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문제 인식에 기반해서다. 특히 2015년 중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유행를 겪으면서 감염병 재난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보건부 신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지난 4일 '새 대통령에게 바랍니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복지 중심의 보건복지부 체계는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정책 설계와 집행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독립적 보건 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지난달 공개한 '제21대 대통령 선거 보건의료 분야 정책제안서'에서도 의료 거버넌스 혁신을 위한 방안으로 '보건부 신설'을 제시했다.
의협은 이 정책제안서에서 "보건의료 정책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거버넌스를 통해 추진돼야 하지만 현재의 보건복지부 체계는 보건의료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정책 설계에서 집행까지 일관성 있게 이끌 수 있는 체계가 필요성을 강조하며, 전문 부처인 ‘보건부’의 신설을 요구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별도의 보건부 신설이 필요한 이유로 '보건’과 ‘복지’가 혼재된 현행 보건복지부 조직에서는 감염병(보건의료)과 같은 재난 사태에 전문적인 판단과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방역정책 혼선, 백신 수급 문제 등을 초래한 배경에도 보건복지부의 공중보건 위기상황 대응 역량 부족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예산이 매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분야 예산 비중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125조원을 넘기며 정부 총지출 예산의 18.5%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하지만 이 중에서 보건의료 분야 예산은 총 18조3041억 원에 그쳤다. 그나마도 보건의료 예산 가운데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이 14조1277억 원으로, 순수 보건의료 분야 예산은 4조1764억 원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내 인력 현황에서도 사회복지 업무에 편중된 인력 쏠림이 뚜렷하다. 보건복지부 내에서 사회복지 업무 관련 인원의 비중은 지속해 증가하고 있지만 보건의료 업무 관련 인원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다.
이렇게 보건복지부 내 사회복지와 보건의료 간 불균형적인 예산배분과 인력배치는 보건의료 관련 정책예산 축소로 이어지고, 나아가 보건의료행정의 전문인력 축소로 이어지면서 보건의료 전문성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보건의료정책을 비전문가가 결정하게 되면 현장과는 거리가 먼 행정편의적 정책이 도입되거나 국민건강을 위한 보건의료정책이 정책 집행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며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고, 공중보건위기와 환경 변화로 인한 질병 등에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조직과 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의료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보건부 신설'에 대한 신중론과 반대의견도 존재한다. 보건의료분야가 복지, 노동,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분야와 밀접하게 연계된 정책 영역이란 점에서 보건의료 분야만을 담당하는 독립된 부처 구조는 오히려 통합적 정책 접근을 힘들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무엇보다 건강결정요인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보건정책은 복지정책 등과 연계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김선희 한경대학교 공공행정전공 교수는 2023년 1월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가 발간한 <월간 복지동향>에 기고한 '보건복지부 조직개편의 내용과 문제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보건의료 기능과 사회복지 기능간 연계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건부 독립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선희 교수는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복지 분리보다는 통합적 운영이 바람직하다"며 "건강정책의 경우 노인 및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와 연계되며, 건강보험과 건강정책을 매개로 보건의료정책과 보건산업이 사회복지분야의 사회복지정책과 사회보험, 공공부조와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인구고령화를 고려해 의료-돌봄 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다양한 정책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만을 별도로 떼어내는 것은 이런 정책 방향성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분절적으로 제공하던 보건의료,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등의 지원을 대상자 중심으로 지역에서 통합 연계·제공하는 절차를 규정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이 질병의 치료를 넘어 예방과 건강관리 및 돌봄의 기능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돌봄의 효과성과 대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복지와 의료가 통합 제공돼야 한다"며 "부처가 분리될 경우 지금보다 훨씬 더 분절적으로 서비스 제공이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책 전문가들은 보건의료정책의 전문성을 강화하려면 부처 분리보다는 보건복지부 내 전담 조직 확대, 전문가 참여 제도화, 부처 간 협업 시스템 정비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보건부문의 분리보다는 보건-복지 통합 기능 유지가 바람직하며, 복수차관제 도입에 따른 행정성과 이행 측면에서 보건복지부의 보건 기능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흡한 점을 개선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