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용(대한내과의사회 회장)

[라포르시안] 정부가 내년부터 전국민 주치의제도 시범사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정된 가운데 대해 의료계가 참여 유인 부족, 수가 미비, 인프라 부족 등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해당 사업은 포괄수가제로 가기 위한 초석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주치의제도 시범사업을 담은 1차 의료체계 개편안을 최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주치의 제도는 지역사회 중심의 지속가능한 1차 의료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취지로, 환자별로 담당 주치의를 지정해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상담, 합병증 조기 발견 및 예방 등을 지원하게 된다.
복지부는 주치의 중심의 맞춤형 1차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국 30개 의료기관을 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국민 3만명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후 대상과 지역을 순차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약물 중복처방 및 부작용을 예방하고, 연평균 외래진료 횟수가 많은 국내 의료 이용 행태를 개선해 의료쇼핑과 과잉진료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예방 중심의 질환 관리를 통해 중증 질환으로의 진행이나 응급·입원 치료를 줄이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제도 시행의 현실성과 효과에 대해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사업 참여 의료기관 1곳당 1,00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하는데,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인프라 확충 및 관리가 어려워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과 인원 투입 대비 낮은 보상체계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싼 값에 의료 서비스 효과를 높이려는 정부의 꼼수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난도 있다.
대한내과의사회 이정용 회장은 지난 23일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주치의제는 모델 설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제도의 목적이 낮은 가격의 의료 서비스 제공과 의료 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정용 회장은 “주치의제도를 도입했던 프랑스는 1차 의료기관의 전문의 비율이 80% 이상으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구조다. 프랑스는 처음에 수가를 굉장히 좋게 줬고, 그 결과로 의사들이 전문주치의 역할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됐다”며 “그런데 보험 재정이 어려워지자 수가를 깎았고, 썰물처럼 의사들이 빠져나갔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시범사업 때는 수가를 잘 줘서 참여를 유도하지만,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수가를 깎으면 다 빠져나가게 된다”며 “일본 내과의사회 회장과 부회장에 따르면 일본도 주치의제 수가가 좋다가 점차 깎이면서 다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의료정책 입안자들의 공통된 패턴이다. 돈은 조금 쓰고 효과는 크게 보려고 하는 식”고 꼬집었다.
게이트키핑 기능이 강화되면 환자의 불편도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회장은 “게이트키핑이 되면 환자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상급종합병원에 가려고 해도 주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갈 수 있게 되는 구조가 된다”며 “의료급여 환자의 선택기관제와 같다. 의료보호 환자가 한의원이나 치과에 가려 해도 주치의 의뢰서를 받아야 한다. 이런 구조가 주치의제의 현실이다”라고 강조했다.
특정 진료과에 정책 혜택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이 회장은 “현재 대통령 주치의도 가정의학과 교수 출신이고 복지부 장관도 가정의학과 출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의학과가 적극적으로 앞에 나설 수 있겠나”라며 “오히려 주치의제도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정과에 정책이 집중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모든 과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며 “주치의제를 어떻게 설계하고 접근하냐가 중요하다. 가정의학과가 하든 내과가 하든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형식적 주치의제가 굉장히 교묘하게 제도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재택의료에 대한 정부의 방향성도 문제로 꼽았다. 이 회장은 “재택의료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모든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라며 “그런데 비대면진료를 하라고 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왕진가방 들고 나가라고 하는 식의 극단적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재택진료를 활성화하려면 수가부터 현실화해야 한다. 1회당 30만~40만 원 정도 줘야 하루에 10회를 나가도 할 만하다. 그래야 의사들이 병원에 앉아서 진료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건보 재정을 감안할 때 왕진 한 건당 최대 15만 원 이상 주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설계된 주치의제는 환자를 병원에 묶어두는 구조다. 주치의제 수가로는 왕진까지 포함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정부가 주치의제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과 내과의사회 차원에서 주치의제도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주치의 중심 맞춤형 1차 의료체계 구축 ▲주치의제 운영 및 방문·재택 진료에 대한 보상체계 강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이미 공단 일산병원과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내과의사회 상임이사회 차원에서도 대응 논의가 있었다. 특히 신창록 내과의사회 자문위원장이 공식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 때는 주치의제도 추진이 느렸지만 이재명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6월부터 본격적으로 드라이브가 걸렸다. 지금은 많이 논의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정용 회장은 주치의제도가 포괄수가제로 가기 위한 초석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이 시범사업은 최초접촉(First contact), 포괄성(Comprehensiveness), 지속성(Continuity), 조정성(Coordination)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춘 의료서비스 제공기관을 중심으로 1차의료를 재정립하겠다는 개념”이라며 “이걸 보면 결국 정부는 포괄수가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민 주치의제는 분명히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목적으로 설계된 제도이자 의료기관 통제 수단이다”라며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내과의사회 차원에서 되는 일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가 나서야 하는데, 지금 의협은 의대생, 전공의 문제에만 몰두해 있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내과의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내과의사회는 대선기획위원회를 의료정책위원회로 전환해서 회원 보호를 위한 보건의료정책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