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클라리파이 사장)
[라포르시안] CT(Computed Tomography·전산화단층촬영) 검사 건수가 급증하면서 방사선 노출에 따른 암 발생 위험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복부나 흉부 CT보다 약 5~7배 높은 방사선량(≥50mSv)이 수반되는 ‘고선량 CT’ 사용 비율이 빠르게 증가해 환자 안전에 대한 의료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연구팀이 최근 ‘British Journal of Rad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138만여 건의 CT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고선량 CT 비율이 0.25%에서 0.86%로 2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CT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실제 방사선량은 줄지 않았으며, 과체중·비만 환자 증가와 다중시기(multiphase) 촬영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해당 연구 주 저자이자 MGH 방사선 안전위원장인 마단 레하니(Madan Rehani)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연구진으로서도 충격적이었다. CT 장비가 발전하면 선량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는 이와 반대로 나타나는 사례가 있다”며 “고위험 프로토콜의 선별적 적용과 장비 제조사의 사전 경고 기능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체질량지수(BMI) 정보가 확보된 약 5000건의 CT 검사 가운데 약 80%는 과체중 또는 비만 환자에게 시행됐다. 이들 환자군에서 고선량 CT 발생 비율은 저체중이나 정상 체중 환자보다 연구 기간 중 약 7배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동맥 및 관상동맥 조영(CTA)과 두부·경부·흉복부 조영 CT와 같이 넓은 해부학적 범위와 다중시기 촬영을 요하는 프로토콜에서는 고선량 CT가 빈번하게 시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응급의학저널(The Journal of Emergency Medicine)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19부터 2022년까지 응급실에서 시행된 CT 검사 중 0.8%가 고선량(≥50mSv)에 해당했으며, 이 중 89%는 조영제를 사용한 검사로 보고됐다. 관련해 전문가들은 CT 기술 발전으로 고도 비만 환자까지 검사할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전체 방사선량이 증가하는 ‘역설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학술지 ‘JAMA Internal Medicine’에 올해 4월 실린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1년간 시행되는 CT 검사가 최대 10만 건의 암 발생과 연관될 수 있다는 분석을 통해 CT 검사로 인한 방사선 피폭의 사회적 위해성을 재조명했다. 뿐만 아니라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역시 누적 방사선 노출이 암 발생 위험과 관련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최대한 방사선량을 낮추는 ‘ALARA 원칙’(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을 권고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CT 촬영 건수는 31% 증가해 2023년 기준 연간 1467만 7526건에 달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1년 통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282건으로 미국(255건)보다 약 10% 높은 수치이자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증가세는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건강검진 수요 확대 등으로 CT 활용이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환자의 경우 연간 두부 117회·흉부 10회·복부 3회 등 CT 촬영 횟수가 130회를 넘는 사례도 보도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CT 검사 건수와 환자 방사선 피폭량이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방사선 관리 시스템 구축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른 주요 대응 방안으로는 ▲검사 프로토콜 표준화·최적화 ▲선량 추적 시스템(Dose Management System·DMS) 도입 ▲저선량 영상 기술 적극 활용 등이 제시되고 있다.
환자 안전과 진단 영상의 품질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CT 방사선량 관리는 더 이상 영상의학 분야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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