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의료기관 등서 활동간호사는 61% 불과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간호법 개정안' 입법 추진
병원계 "의료기관 막대한 인건비 부담 떠안아...수도권 간호사 쏠림 심화"

[라포르시안] 병원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니다.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병원이 돌아가는 게 정상이라는 잘못된 인식마저 생겼다.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숙련도 높은 경력직 간호사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고된 업무를 견디다 못해 병원을 떠나기 일쑤다. 경력직 간호사가 빠져나간 자리는 저연차의 신규 간호사로 대체한다. 

간호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는 신규 간호사로 인해 업무부담이 늘어난 선배 간호사들의 '태움'과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이런 상황은 다시 신규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게 만들고 인력난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정부는 병원 현장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간호대 입학정원 확대를 통한 신규 간호사 배출 확대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적정 간호인력을 확충할 수 없는 의료현장의 문제는 방치한 채 신규 간호사 배출만 확대한 정책은 '유휴 간호사 급증'이라는 풍선효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면허 간호사 53만 여명 중 의료 현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경력단절 간호사가 2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간호협회가 고용노동부의 ‘지역별고용조사(전국 직업·성별 취업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4년 기준 우리나라 면허 간호사 수는 52만7000여 명으로 최근 5년간 11만2000여 명이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실제 의료기관 및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32만3천여 명(61.29%)에 그쳤다. 

나머지 20만4000여 명은 의료 현장을 떠난 ‘유휴 간호사’로, 2019년 15만9000여 명에서 4만5000여명이 늘었다. 특히 작년 6월 기준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는 전체 면허 간호사의 51.04%에 그쳐 OECD 평균 활동률(68.2%)을 크게 밑돌았다. 

한 간호대학의 2024학년도 나이팅게일 선서식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한 간호대학의 2024학년도 나이팅게일 선서식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의료전문가들은 간호사들이 현장을 떠나는 주요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보상 체계 ▲경력 단절 후 복귀 어려움 등을 지적한다. 

특히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상태에서 간호사 1인당 터무니없이 많은 환자 수는 과중한 업무부담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일으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간호협회에 다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OECD 평균보다 2~5배 많다. 이로 인한 피로와 소진은 환자 안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3교대·야간 근무에 비해 낮은 임금 수준, 출산·육아 후 복귀의 어려움은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실제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사직률은 5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의료법에 간호인력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어기는 의료기관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요구는 간호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초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 법제화’를 골자로 한 간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간호사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인력 배치 기준을 법으로 명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환자군, 병원 특성, 근무 형태 등을 고려해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기준으로 간호 인력 배치기준을 정하도록 명시하는 것이다. 이 기준은 간호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수립하도록 해 현장 간호사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병원별 간호사 배치 현황을 공개하고, 국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명문화함으로써 기준 준수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수진 의원은 "현행법은 국가로 하여금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을 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이 없다"며 "보건복지부장관이 환자 특성 및 중증도 등에 따라 간호사의 적정 업무량을 고려하여 의료기관의 종별·근무조별·간호단위별 간호사 배치기준을 마련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간호계도 적극 반기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전국 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20명, 30명, 심지어 70명까지 환자를 돌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소 기준이며, 선언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곧바로 간호 인력난 해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간호사 인건비 부담이 병원에 전가될 경우, 중소병원은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방 중소병원은 기준 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의료 공백이 확대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간호인력을 충원하더라도 근무 환경 개선, 임금 인상, 교대근무 부담 완화 같은 근본적인 처우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숫자 채우기식 대책’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와 병원계는 간호법 개정안 추진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간호법 개정안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환자 안전과 양질의 간호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적정 수준의 간호인력 배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하지만 간호사 인력 배치 확대는 간호사 확보 수준, 간호사 면허 보유자의 임상 활동률, 지역별·종별 수급 불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장기적인 이행계획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사단체와 병원계는 개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견서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법령으로 고정하는 방식은 매우 비현실적"이라며 "의료기관의 유형(의원, 병원,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과 병동 형태(일반병동, 중환자실 등), 진료과목별 환자 중증도에 따라 간호 요구도가 현저히 상이하므로 정량화가 어렵고, 형식적인 기준이 실효성 없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의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의료기관에은 야간, 휴일 등 환자 진료 자체를 회피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의료기관에서 과중한 업무문제는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님. 개정안과 같이 간호사에 대해서만 정량적 배치기준을 명문화하면 의사·의료기사·간호조무사 등 다른 의료 직역 간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원계는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가 의료기관의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대한병원협회는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개정안에는 간호사 배치기준 준수를 위한 국가의 재정지원, 인력 양성 및 배치 인프라 구축 등 구체적인 실행 대책 없이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정하고 있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을 법률로 명문화할 경우 의료기관의 막대한 인건비 부담으로 직결되며, 민간 중소의료기관은 추가 재정 투입이 어려워 의료서비스 위축과 병원 경영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지방·중소병원은 이미 간호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법제화하면 수도권·대형의료기관으로 간호사 집중이 심화하고, 지역 의료체계 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협은 "현행 의료법 상의 의료인 정원 기준과 다른 별도의 간호법 상 인력기준 신설 시 두 가지의 법적 기준 병존으로 인한 의료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법 체계상 의료기관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은 의료법에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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