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디와이프라임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DTx)는 전통적인 의약품·의료기기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공지능(AI)·가상현실(VR)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을 활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해당 분야는 AI 의료기기와의 융합을 통해 개인맞춤형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KPMG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DTx 시장은 연평균 20.5% 성장해 2025년 89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시장 역시 연평균 27.2% 성장해 올해 5288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독일은 2019년 디지털헬스케어법(Digitale Versorgung Gesetz·DVG)을 제정하며 DTx 급여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DVG는 디지털 치료제가 ▲안전성 ▲기능 ▲질 ▲보안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임시수가를 부여하고, 12개월간의 임상 결과 평가를 거쳐 법정 건강보험 급여 자격을 부여하는 독창적 시스템이다. 하지만 급여를 신청한 총 20개 디지털 치료제 가운데 5개만이 급여 진입에 성공했다. 이는 혁신적 제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장벽이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주목할 점은 독일 최대 건강보험 회사 테크니커 크랑켄카세(Techniker Krankenkasse) 보고서에 따르면, DTx 처방 의사는 전체 18만 명 가운데 약 7000명으로 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진의 ▲DTx에 대한 이해 부족 ▲기존 진료 패턴에서의 관성 ▲환자 순응도 관리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제도적 인프라 구축만으로는 DTx 시장 활성화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DTx 분야 개척자로 여겨졌던 ‘피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의 파산은 DTx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2017년 9월 소프트웨어만으로 치료 목적의 미국 FDA 인허가를 받으면서 주목받았던 디지털 치료제 ‘리셋’(reSET)은 약물 중독 치료 분야에서 임상적 효과를 입증했지만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처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불자들이 상환을 거부했고, 의료 코드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는 DTx 산업이 직면한 핵심적인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임상적으로 유효한 디지털 치료제라도 보험 수가 체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DTx는 AI 의료기기와 융합해 치료 효과의 획기적 개선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한 개인맞춤형 치료 프로토콜 개발,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을 통한 적응형 치료 조정 그리고 예측 분석을 통한 선제적 개입 등이 주요 융합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 분야에서의 AI 기반 DTx 활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한 챗봇 치료, 음성 분석을 통한 우울증 진단, 행동 패턴 분석을 통한 개인화된 인지행동치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존의 일률적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 개별 특성에 맞는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AI 기술은 DTx의 약점 중 하나인 환자 순응도(adherence)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개인의 생활 패턴과 선호도를 학습해 최적의 개입 시점을 찾아내고, 게임화(gamification) 요소와 결합해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전략이 개발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의 성공적 시장 정착을 위해서는 명확한 경제성 평가 방법론과 보험 수가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기존 의약품·의료기기와 달리 DTx는 개발비 대비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독특한 경제적 특성이 있다. 다시 말해 기존 가격 책정 모델로는 적절한 평가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가치 기반 의료 관점에서 DTx의 경제성 평가를 위해서는 단순한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의료비 절감 효과 ▲환자 삶의 질 개선 ▲의료진 업무 효율성 증대 등 다차원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DTx와 AI 의료기기의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그러나 피어 테라퓨틱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술적 우수성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따라서 성공적인 DTx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서는 세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임상 근거 구축과 동시에 보험 수가 확보를 위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독일의 DiGA(Digitale Gesundheitsanwendungen) 제도처럼 임시수가를 통한 실증 기반 평가 시스템을 국내에도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DiGA는 DVG에 따라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디지털 의료 앱으로 환자가 의사 처방을 통해 안전하게 치료 앱을 사용하도록 하고, 기업은 임상적 근거를 통해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둘째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친숙한 사용자 경험 설계가 중요하다. AI 기술을 활용하되 복잡성을 숨기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단독 제품이 아닌 기존 의료 생태계와의 통합을 고려한 플랫폼 전략이 요구된다. 더불어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병원정보시스템(HIS) 등과의 원활한 연계를 통해 의료진의 업무 부담도 최소화해야 한다.

DTx와 AI 의료기기의 융합은 개인맞춤형 의료 실현이라는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혁신과 함께 ▲규제 체계 ▲보험 수가 ▲의료진 교육 ▲환자 수용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발전해야 한다. 

독일 DiGA 제도의 성과와 한계, 피어 테라퓨틱스 사례는 DTx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에 있으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필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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