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의제에 안전권 등 국민 기본권 확대도 포함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 개헌안'에 건강권 신설 추진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 ‘국민건강 인식’ 조사...91.6% “헌법에 건강권 명시” 응답

[라포르시안] 국민 10명 중 9명은 헌법에 국민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을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이 개인의 책임 영역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 기업이 함께 보장해야 하는 국민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월 제시한 '대통령 개헌안'에서 국민 기본권을 확대해 생명권과 안전권, 정보기본권, 주거권, 국민 건강권 등의 기본권을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에도 부쳐지지 못했다. 국민 건강권을 담은 개헌은 무산됐다. <관련 기사: 대통령 개헌안 전문 공개...'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16일 임기 중 중점 추진할 국정과제 1호로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 등을 담은 개헌을 선정했다. 이재명 정부가 다룰 개헌 의제에는 안전권 등 국민 기본권 강화 및 확대도 포함될 예정으로, 건강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신설하는 방안이 재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학교 건강문화사업단이 올해 5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 건강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수요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다수 응답자는 '건강권'을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1.6%가 '헌법에 건강권을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헌법에 국민의 '건강권'은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다만 '모든 국민은 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헌법 제36조 3항과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 정한 제34조 2항,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규정한 제35조 1항 등에 간접적으로 질병 예방과 건강한 생활을 누릴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석된다.
최근 들어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고 건강 형평성 확보가 보건의료 정책의 주요 아젠다로 떠오르면서 국민의 건강 불평등 해소를 위한 '건강 민주화'를 국가가 보다 명시적으로 헌법에 규정해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헌법에 건강권이 신설되면 국가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의무를 지게 된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나 공의료 확대처럼 의료접근성 및 치료비 부담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건강한 상태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인 요인을 개선하고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까지 국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건강권 신설은 궁극적으로 보건복지 체계 전반의 개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소득과 교육 수준, 노동, 주거, 환경 등의 사회적 용인이 모두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건강권을 국민기본권으로 신설하는 개헌 추진 관련해 건강정책학회와 국제보건의료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등 9개 학회는 공동성명을 내고 개정 헌법에 건강권 보장을 국가의 의무로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학회는 성명을 통해 "현재의 헌법에 미약하게 규정하고 있는 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건강권의 보장은 보건의료의 접근성 또는 비용 보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요인, 환경적 요인 등 보건의료 외적인 건강 결정 요인으로 인한 건강의 격차 또는 차별이 해소될 수 있도록 건강할 권리에 대해 평등하고 포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학회는 "더 나아가 건강할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보건의료 및 소득 상실의 보장을 넘어서 건강 격차 또는 차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강권 신설과 함께 헌법에 '건강 민주화'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았다. 건강 민주화란 건강 관련 정책, 사업의 혜택 및 필수의료 이용을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보건·의료·예방·건강 형평성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한 기본 인프라로서 헌법적 권리 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번 조사 결과 헌법에 '건강 민주화'를 명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89.6%였다. 특히 국가가 '건강 불평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은 91.5%에 달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고(85.9%), 건강 불평등 확대로 이어지는(83.5%) 악순환을 끊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에서 74.5%가 '건강공동체 운영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건강공동체는 국민 스스로 주체적으로 나서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공동으로 해결하고 건강사회를 이루는 국민의 자발적 운동이다. 건강공동체는 국민 개개인이 조성하긴 어렵다는 점에서 구성과 운영 방안을 제시하는 캠페인 형태가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국민이 건강공동체 운동 혹은 캠페인이 시작됐을 때 참ㅕ 의사 여부가 중요하다.
건강공동체 운동 관련해 캠페인을 할 경우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는 83.2%였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16.8%), 흡연 문제(14.6%), 비만(14.4%) 등이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이 필요한 주요 건강 문제로 꼽혔다.
한편 건강연금 포인트 제도 도입에도 국민 10명 중 9명꼴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연금 포인트 제도는, 국민이 스스로 건강관리를 할 경우 보상해 주는 개념의 정책이다. 국민이 운동, 금연, 정기 건강검진 등 건강관리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이를 의료비-건강서비스 또는 노후 연금 형태로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강 인센티브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기존 보험 중심의 사후 치료 체계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강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된다. 즉, 건강관리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통해 스스로 건강을 지키면서도, 노후 의료 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건강 복지 모델이다.
이번 조사에선 응답자 87.1%가 제도 도입에 찬성했으며, 제도 도입시 노후질병 대비에 도움이 될 것(88.0%), 제도 참여 기업의 가치가 상승할 것(84.8%)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