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고려대 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라포르시안] 키 성장은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에게 걱정거리이자 희망사항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키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신체적 발달을 넘어서 사회적 경쟁력을 결정짓는 잣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호르몬 결핍에 의해 성장이 어려운 성장호르몬 결핍증(GHD: Growth Hor-mone Deficiency) 을 겪는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키가 작은 것으로 인한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성장호르몬 결핍증 환아들에게서는 체지방이 늘고 근육량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성장기인데도 신체 발달이 매우 더디게 일어나면서, 외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또래 관계 속에서 자존감 저하와 정서적 위축을 경험한다.
이들이 겪는 ‘성장 지연’은 단순한 신체 발달의 늦어짐을 넘어, 심리적·사회적 부담까지 포함한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지연되면 학업 및 사회생활 전반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나아가 질병의 희소성으로 인한 치료법 접근성 측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1일 1회 용법의 성장호르몬 피하 주사 치료가 표준요법으로 사용돼 왔다. 대규모 임상시험과 리얼월드 사용을 통해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 프로파일이 검증된 요법이지만, 여전히 환자와 보호자가 이용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남아있다.
한 연구 결과, 성장호르몬 주사를 투약한 아동의 54%, 청소년의 32%가 주사 통증을 호소했으며, 보호자의 3분의 1은 매일 주사를 투여해야 하는 관리 자체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러한 불편은 순응도 저하로 이어진다. 뉴질랜드에서 진행된 전수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66%가 주당 한 번 이상 주사를 빠뜨렸으며 이는 곧 성장 속도의 저하로 연결됐다. 단순히 ‘가끔 빼먹는’ 차원이 아니라 치료 성과의 근본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실제 임상에서 ‘예상만큼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상황 뒤에는 순응도의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주 1회 용법의 성장호르몬 피하 주사제이다. 미국에서는 소마파시탄(Somapacitan)이 2020년 성인, 2023년 소아 대상으로 승인됐고, 일본과 유럽에서도 허가를 받았다.
임상시험에서는 1일 1회 용법과 동등한 수준의 유용성이 확인됐으며, 환자와 보호자의 선호도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아동의 79%, 청소년의 84%가 주 1회 제형을 선택했으며, 보호자 역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순응도 개선이 곧 치료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주사 횟수가 줄어들면 누락 가능성이 줄고, 치료 효과가 나타나면 아이들의 정서적·사회적 부담도 완화된다. 결국 이는 환자의 성장 목표 달성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는 접근이다.
국내에서는 주 1회 용법의 제제가 잠시 도입됐다가 국내 사업을 철수하면서 현재는 주1회 용법 치료 옵션이 없는 상황이다. 또한 신약이 허가를 받아도 급여 등재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환아와 가족이 치료비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기를 놓치면 치료의 골든타임이 소멸되어 버리는 질환이므로, 치료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1회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공급해야 한다.
성장호르몬 결핍증 치료의 궁극적 목표는 신체적 성장과 함께 아동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성장호르몬 결핍증 환자들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치료 접근성을 높이며 순응도를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주1회 용법 성장호르몬 제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정책적 논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