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배(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총무이사)

[라포르시안] 현 정부가 표방하는 핵심 의료정책 기조는 ‘지역 기반 필수의료 강화’와 ‘의료·돌봄 통합체계 구축’이다. 방문진료는 이 두 가지 축을 실질적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수단으로 꼽히고 있다. 고령화·만성질환 시대에서 병원 중심의 입원·외래 진료만으로는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 특히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자, 거동 불편 환자, 퇴원 후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자에게는 방문진료가 지역 내 돌봄 연속성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의료행위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방문진료 필요성과 중요성에 비해 제도적 기반은 취약하다는 지적이 높다. 구체적으로 1차의료기관 중심의 방문진료 수가체계 신설 및 방문진료 전담의사제·지역수가제 연계를 통한 합리적 보상 방안 마련, 1차의료기관의 방문진료 행정부담 완화, 방문진료 의료진에 대한 법적 안전망 구축 등이 요구되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경문배 총무이사를 만나 단독 개원의로서 지난 1년간 약 100회의 방문진료를 이어오며 느낀 경험과 효과, 제도적 지원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경문배 총무이사는 “방문진료가 처음부터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요청이 있었고, 오랫동안 봐온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아침 출근 전, 점심시간, 진료 마감 후 등 개인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하기에 피곤하고 식사를 거를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한 의사라는 생각에 기꺼이 나선다”고 말했다.

경 총무이사는 “정부가 원하는 방문진료·재택의료 목표가 소수의 방문진료 의원이 수많은 거동불편 환자를 모두 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 환자를 내가 직접 찾아가 돌보는 것이야말로 의료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료를 제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경 총무이사는 방문진료 중 보호자의 폭력과 허위 민원 제기 등으로 겪었던 위험한 경험도 공개했다.

그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가정이 있었다. 환자는 중증 영양실조 상태였고, 보호자인 아들은 요양병원 연계나 지자체 개입을 거부하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며 “지자체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강한 거부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환자를 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에 주 1회씩 방문을 이어갔지만, 방문 종료를 통보하자 보호자가 폭력적으로 돌변해 돈을 훔쳐갔다며 소리를 지르고 돌아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경찰이 출동해 겨우 마무리됐다”며 “이후 보건소·공단·심평원 등에 민원이 제기됐지만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문진료는 CCTV 등 안전 장치가 없는 환경에서 이뤄지기에 폭행, 감금 등의 위험이 크다”며 “진료 거부권과 별도로 최소 2인 1조 동행 원칙, 경찰·보건소 등과의 비상연락체계 가동 등 의료진 보호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 위해 수가 현실화·행정 간소화·지역 연계 필요”

방문진료가 헌신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선 낮은 수가 개선, 인력 보상 강화, 행정 부담 완화, 법적 안전망 구축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 총무이사는 “방문진료를 위해선 이동시간, 장비, 인력 등 추가비용이 발생하지만 현재는 의료기관이 전액 부담하는 구조인 만큼 수가 현실화와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가장 시급하다”며 “대부분의 1인 의원이 간호조무사를 고용하는 현실을 고려해 간호조무사 동반 시 가산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독 개원의 참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본인부담금 경감 대상을 확대해 수요를 높이고, 행정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 재택의료 시범사업 청구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의료와 복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치료는 의원이 담당하되 복지는 지자체와 보건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지역사회 정보공유 체계를 정비하고, 다양한 전문과 협진을 통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치의 제도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현장의 실상을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 총무이사는 “만성질환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모든 일차의료 의사는 이미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다만, 환자의 생활환경, 돌봄 인력, 다제약 복용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려면 주치의제도가 필요하다. 의료뿐 아니라 영양·재활·정서 지원까지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 중인 만성질환관리제, 재택의료 시범사업, 장애인 주치의 사업 등은 이미 주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향후 통합돌봄 시스템의 중심은 주치의가 될 것”이라며 “의사 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제도 설계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주치의제는 특정 과의 독점이 아닌 유기적 공동체 시스템이다”라며 “의사들이 이 구조 속에서 리더 역할을 자임해야 의료기관의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과 국민 건강 향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1인 의원도 방문진료 가능...제도적 보완 필수”

“주치의 중심 통합돌봄 정책에서 의사들이 정책 설계자돼야”

경 총무이사는 “1년간의 경험을 비춰볼 때 1인 의원의 방문진료 참여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원의 주된 진료가 아닌, 기존 환자를 위한 보충적 서비스로서 가능하다”며 “아침, 점심, 진료 마감 후 등 개인 시간을 활용해 환자를 찾아가는 것은 소규모 의원에서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문진료 활성화를 위해선 수가 현실화, 간호조무사 가산 수가, 행정 간소화, 안전 확보 등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긴급상황 시 즉시 경찰·소방·보건소로 연결되는 비상연락체계를 지자체가 구축해야 하고, 진료거부권에 준하는 의료진의 안전 확보 권한과 법적 면책 조항이 명확히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나는 방문진료의 선구자가 아니다. 이미 많은 의사들이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다”며 “많은 동료 의사들에게 ‘우리 안의 사명감’을 제도 안으로 가져오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방문진료를 새로운 영역이나 희생으로만 보지 말고, 내 환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잠시 시간을 쪼개 환자의 집을 찾아가는 경험은 그 어떤 진료보다 큰 보람을 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통합돌봄 정책에서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이 시스템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경 총무이사는 “정부 정책은 결국 주치의 중심의 통합돌봄으로 갈 것이다. 의사들이 주도권을 잃고 객체로 밀려날 것인지, 시스템 설계의 리더로 설 것인지 지금 결정해야 한다”며 “지금이 현장의 경험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의사의 헌신이 아닌 수가 현실화, 행정 간소화, 안전 확보 등 제도적 보상으로 방문진료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경 총무이사는 “지금도 방문진료를 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소수의 선구자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내 환자는 내가 본다’는 일차의료의 원칙이 재정적으로 뒷받침되고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통합돌봄의 안정적 성공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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