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재(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교수)
[라포르시안] HIV는 과거와 달리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고혈압·당뇨처럼 장기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기 진단 후 꾸준히 치료를 받을 경우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일반 인구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에 따라 HIV 관리의 초점은 병원 방문 횟수보다 바이러스 억제 상태를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감염인의 90% 이상은 꾸준한 복약을 통해 바이러스 억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물리적·사회적 요인으로 병원 방문에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바이러스가 안정적으로 억제된 감염인에게 잦은 내원은 심리적·시간적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해 국내외 진료 환경에서는 치료 안정성이 확보된 감염인을 대상으로 병원 방문 간격을 최대 6개월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DHHS, 유럽에이즈학회, 대한에이즈학회 모두 일정 요건 충족 시 6개월 진료가 가능하다는 권고를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이런 진료 간격 확대의 전제 조건은 HIV 약물 내성 관리다. 내성이 발생하면 치료 전략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사용 가능한 약제 선택폭이 제한되기 때문에 장기 치료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진료 간격이 늘어날수록 복약 순응도와 내성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 김연재 전문의를 직접 만나 HIV 장기 치료 시대를 맞아 감염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는 ‘6개월 1회 진료’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안정적인 치료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인 ‘HIV 약물 내성’의 개념과 관리 방안을 들어봤다.

- 과거 대비 HIV 치료 기술이 많이 발전하면서 질환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현재 HIV 치료 및 관리의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 HIV가 국내에 처음 보고됐던 시기에는 치료제 개발이 충분하지 않았고, 감염인의 치료 접근성도 낮았다. 이로 인해 많은 감염인이 후천성면역결핍증(이하 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단계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입원율과 사망률도 매우 높았다. 다행히 이후 HIV 치료제의 안전성과 복용편의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국가 차원에서도 HIV 치료 접근성을 대폭 높이면서 지금은 AIDS로 악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사망률도 크게 낮아진 상태다.
진료 현장에서도 HIV를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일상에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실제 치료도 이러한 관점에 기반해서 이뤄지고 있다. 과거에는 HIV 진료의 초점이 AIDS로의 진행 여부, 약제 부작용 및 내성 관리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감염인들이 충분히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 설문조사 등을 살펴보면 여전히 많은 HIV 감염인들이 병원 방문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감염인들의 진료 주기는 어느 정도 간격으로 이뤄지나.
= 감염인이 병원 방문에 부담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감염 사실이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과거에는 의료진조차 HIV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감염이 쉽게 전파된다는 오해가 있었고, 진료 거부와 같은 암묵적 차별도 존재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감염인들에게 심리적 장벽으로 남아있다. 또한 병원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분들도 많아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환자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진동벨로 호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내원할 때마다 스스로가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상기돼 내원이 꺼려진다는 감염인들도 있다.
과거에는 기회감염 발생이 빈번하고, HIV 치료제 내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해 대부분의 감염인들이 3개원 간격으로 내원해 추적 관찰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위험이 크게 줄어들면서 상당수의 감염인들이 6개월 간격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 6개월로 진료 간격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과 조건을 충족해야 하나.
= 진료 간격을 6개월로 늘리기 위해서는 감염인의 상태가 충분히 안정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치료제를 규칙적으로 꾸준히 복용해 순응도가 높고, 면역세포인 CD4+ T세포 수가 위험 범위를 벗어나 있으며,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억제된 상태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면 초기에는 3개월 간격으로 경과를 살피다가 점차 6개월 간격으로 진료 주기를 조정할 수 있다.
- 현재 6개월 간격으로 진료를 받는 감염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 현재 진료 중인 감염인의 약 80%가 6개월 간격으로 추적 관찰을 받고 있으며, 6개월 진료에 대한 만족도가 대부분 높은 편이다. 특히 젊은 남성 직장인 비중이 높은데, 내원할 때마다 연차나 외출을 사용해야 하는 부담이 줄면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치료 성과 측면에서도 진료 간격이 6개월로 늘어나더라도 치료 효과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부 감염인은 스스로의 복약 관리에 불안감을 느껴 진료 간격이 길어지면 복약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해 짧은 진료 주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 HIV 진료 간격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성 등 HIV 치료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돼야 할 것 같다. HIV 치료에서 ‘내성’은 임상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며, 실제 발생시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치료제를 복용하더라도 체내에서 HIV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소량의 바이러스 복제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러한 복제 과정을 HIV 치료제가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요인이 겹쳐 HIV 내성 유전자가 축적되면, 치료제가 더 이상 바이러스 복제를 차단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바이러스가 다시 증식하면서 면역세포를 파괴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AIDS로 진행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성공적인 HIV 치료를 위해서는 내성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 HIV 치료 과정에서 내성 발생을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의료진과 감염인이 챙겨야 할 요소는.
= HIV 내성 관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다. 치료제를 규칙적으로 복용하지 않으면 체내 약물 농도가 떨어지고, 이 과정에서 HIV 내성 유전자가 축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번 내성이 생기면 치료 효과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의 선택지도 제한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HIV 치료제의 효과가 향상되면서 혈중 농도나 약효가 일정 기간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도 일부 존재하지만 이를 근거로 HIV 치료제 복약을 소홀히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진료 현장에서는 치료제를 매일 일정하게 복용하는 것이 내성 관리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염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 HIV 치료 내성과 관련해 핵심 지표로 언급되는 ‘CVF(Confirmed Virologic Failure, 확정된 치료 실패)’는 일반적인 바이러스 반응 실패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 정확히 어떤 상태를 의미하며, 임상적으로 어떤 점에서 중요한 지표인가.
= HIV 치료 과정에서 간혹 바이러스가 일시적으로 검출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치료제를 잘 복용하고 있다면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이며, 재검사에서는 다시 바이러스가 억제되는 양상을 보인다. 만약 검사를 반복했음에도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면 내성 발생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경우 우선 복약순응도를 점검하고 이후에도 바이러스 수치가 감소하지 않으면 내성 검사를 실시해 ‘확정된 치료 실패(CVF)’ 여부를 평가한다. 실제로 CVF 상태까지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CVF 상태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치료제를 성실히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치료 간격, 내성 관리, 치료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재 임상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HIV 치료제 계열은 무엇인가.
= 과거에는 다양한 조합의 치료제가 사용되면서 감염인마다 나타나는 효과와 부작용이 달라 HIV 치료 및 관리가 복잡한 편이었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감염인이 비슷한 계열의 치료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로 2~3가지의 성분을 하나의 정제로 합친 단일정 복합제가 많이 처방되고 있다. 이러한 복합제는 1일 1회 복용으로 편의성이 높고 부작용이 적으며 내성 장벽도 높아 감염인과 의료진 모두에게 선호된다.
- HIV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입장에서 감염인과 의료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진료실을 방문하는 감염인들에게 항상 HIV 감염을 이유로 결혼, 출산, 직장, 연애 등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HIV 감염이 삶의 단절로 이어지곤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가 열렸다.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기만 하면 HIV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관리가 가능하다.
의료진에게도 HIV 치료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고 싶다. 치료제를 성실히 복용하는 감염인은 전파 위험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의료진이 감염인을 진료할 때 과도한 불안이나 편견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생존 감염인들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감염인들도 다양한 질환으로 타과 진료를 받을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므로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다학제 협진 체계를 강화해 보다 폭넓고 통합적인 진료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HIV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감염인을 향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고 낙인을 해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