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식(주파라과이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

[라포르시안] 필자는 지구 반대편 남미 파라과이에서 의·정 사태를 지켜보며 새삼 위험 분산과 글로벌 다변화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파이’를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2024년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 중 바이오헬스는 6위를 차지했다.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해당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인구 80억의 시장 곳곳으로 진출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극대화해야 한다. 

전 세계가 전쟁과 자국 우선주의·탈진실(post-truth)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시대를 겪고 있다. 이 같은 메가 리스크와 복합 위기에 대응하려면 총력외교가 필요하고 보건의료 외교 또한 새로운 블루오션을 발굴해야 한다. 약 500년 전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DNA와 열정은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의 본질이었다. 이는 기존의 좁은 지도와 시야·편견을 과감히 깨부순 것이었다. 도약을 원한다면 익숙함과 결별하고 다변화된 ‘전방위 외교’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혁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 우수 규제기관(WHO Listed Authorities·WLA) 최초 등록국 ▲WHO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국가 ▲뉴스위크 발표 세계 250대 병원 중 매년 약 20개 병원이 한국에 위치(인구·면적 대비 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헬스케어 국가 ▲OECD 국가 중 연간 1인당 건강검진 횟수 1위(18회) ▲K-메디컬 효과로 2024년 해외 환자 117만 명 유치 ▲화장품 수출 세계 2위·미국 시장 점유율 1위 등극 등 글로벌 바이오헬스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국제기준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미국·유럽·아시아 등 전통 시장을 넘어 중남미·중동·CIS·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다. 특히 약 6억 인구를 보유한 중남미는 풍부한 자원과 에너지, 다양한 소비시장, 식량 수출국이자 K-콘텐츠에 열광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작년 한국의 대(對)중남미 교역액은 567억 달러로 전체 교역의 4.3%, 수출액은 290억 달러로 4.2%를 차지하는 데 불과했지만 향후 잠재성과 확장 가능성은 매우 큰 시장이다.

이 가운데 개발도상국이자 글로벌 사우스 일원인 파라과이는 한국보다 약 4배 큰 면적을 가진 국가로 내륙 44개국 가운데 리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과 파라과이는 올해 한인 이민 6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파라과이는 또한 25만 명의 디아스포라(diaspora)가 거쳐 간 이민의 메카로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중점협력국이자 전략적 파트너로서 ▲보건 ▲공공행정 ▲교통 등 50여 개 협력사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주파라과이 대한민국 대사관(이하 대사관)은 ‘개발 협력’과 ‘보건 산업 진출’ 두 축을 중심으로 파라과이와의 보건의료 외교를 강력히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한국보건산업진흥원(KHIDI)·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와 함께 현장 중심의 입체적 협업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코이카는 1차 보건의료 체계 강화 및 국립보건연구소 건립 등을 지원했고, 코트라는 파라과이의 의료기기 인증제도 선진화 사업(KSP) 및 브라질 의료기기 전시회 호스피탈라(Hospitalar) 참가 기업을 밀착 지원했다. 또한 KHIDI는 메디컬코리아 및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을 선보이고, 한-파라과이 양국에서 총 4회에 걸쳐 세미나를 개최했다.

대사관은 이러한 협력을 총괄 조정하면서 파라과이 정부의 한국에 대한 ‘고위생감시국’ 인정을 입법화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수출 절차 간소화·GMP 실사 면제 등을 포함한 6건의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뿐만 아니라 파라과이 보건복지부 장관·국가위생감시처장·산업통상부 장관 등 주요 인사의 방한도 성사시켰다. 이밖에 중남미 외교공관 중 유일하게 중남미제약산업협회(ALIFAR) 총회에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참고로 필자는 파라과이 복지부 장관만 14번을 만났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파라과이 현지에서 유관기관 간 정교한 분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의약품이 파라과이 주요 수출 품목으로 부상하는 한편 올해 한국산 수술 로봇이 처음으로 파라과이에 진출했고, 한국 기업이 현지 법인을 설립해 파트너십 계약도 체결했다.

국제 정세가 요동친다고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역사 속에서 불확실성과 혼란은 늘 존재해 왔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은 시장 다변화, 우회 경로 활용(Nearshoring), 위험 차단(de-risking)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외교뿐 아니라 비즈니스의 기본이며 상식이기도 하다. 파라과이는 ▲소득세·법인세·부가세 모두 10%의 ‘10-10-10’ 세제 정책 ▲마낄라(Maquila) 제도 ▲낮은 인건비(법정 최저임금 약 400달러 이하) ▲조세 효율성·비즈니스 환경 평가 1위 ▲안정적인 정치·경제·치안 등 많은 장점과 함께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및 미주 대륙 전체 진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망 국가다. 

필자는 파라과이를 포함한 33개 중남미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 고위생감시국 인정 확대 ▲KHIDI·코트라 간 해외 현장 협업 체계 제도화 ▲KHIDI·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거점 사무소 신설 ▲메디컬코리아·세계 바이오 서밋·이종욱 펠로우십 등을 활용한 고위급 방한 유도 ▲코트라가 없는 국가의 재외동포를 보건의료협력원으로 위촉 ▲현지화 전략으로 법인 설립 또는 OEM(위탁생산) 파트너십 확대 등 글로벌 보건의료 협력 로드맵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시선이 너무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발전적 단절’을 모색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을 향해 인식과 행동의 지평을 넓혀야 할 때다. ‘땅에 갇힌 섬’(land-locked)이라는 문학적 표현처럼 지정학의 포로였던 파라과이조차 글로벌 연결을 추진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개방형 교역국인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마음의 섬’(mind-locked)에 가두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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