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 서산의료원장)

[라포르시안] “정부가 이번에는 뭔가 해줄 것 같았는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올려줬던 지방의료원 지원 예산안은 결국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잘려 나갔다. 그토록 발품 팔며 기대했던 현장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김영완 회장(서산의료원 원장)은 최근 라포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김영완 회장은 최근 지방의료원의 어려움은 코로나19의 후유증 때문에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일반 환자들을 강제로 줄이면서 기존 환자들과의 관계가 끊겼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 이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서 병원 운영의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는 것.
코로나 이전인 2017~2019년과 비교하면 지방의료원들의 올해 상반기 외래 회복률은 7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병상가동률 평균도 60% 초반으로 낮다. 과거에는 80%를 넘는 곳도 많았고, 일부 의료원은 흑자 운영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 지난 2024년 전체 의료원 적자는 2,400억원에 달했고, 정부가 한시적으로 876억원을 지원해 1,600억원 선에서 겨우 막을 수 있었지만 올해도 1,900억에서 많게는 2,3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이 원장으로 재직 중인 서산의료원은 병상가동률이 전국 상위권으로 80%를 넘는 수준이지만, 상반기에만 이미 30억원 가까운 적자가 났다. 문제는 다른 지방의료원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는 것. 현금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된 곳도 있다. 김 회장은 “올해 말쯤엔 전체 지방의료원 절반 정도에서 임금 체불이 현실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약값 못주고 상여금 체불되고…의료원이 의료원에 돈 꿔주는 현실”
김 회장에 따르면 일부 지방의료원에선 약값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도매상으로부터 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있다. 급여 체불 문제도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몇몇 지방의료원은 6월 상여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그나마 현금 유동성이 남아 있던 서산의료원에서 20억원을 빌려줘 급한 불을 껐다”며 “직원들 입장에서는 상여금이 생활 계획의 일부로 제때 안 나오면 생활 자체가 흔들린다.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월급날이 다가올수록 의료원장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빠질 지경”이라고 했다.
지방의료원이 단순히 병상만 늘린다고 지역 의료가 회복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했다. 김 회장은 “공공병원을 짓는 데는 적게는 3,000억원, 많게는 그 이상이 드는데 문제는 운영이다”라며 “지어놓고 매년 적자만 발생하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진시의 경우 지방의료원 유치를 위한 시민운동까지 있었지만 결국 운영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추진이 무산됐다는 것.
김영완 회장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단기적인 추경이 아니라 운영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 발전기금을 조성해 운영 적자를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필수진료를 충실히 수행한 결과 발생한 손실은 정부가 사후 보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의료원별로 예산 총량을 설정해 예산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총액예산제 도입을 검토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의 인건비 일부는 정부가 직접 보전해주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 네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시행되면 지방의료원 숨통이 트인다. 다 하라는 게 아니다. 정부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택해 실행하면 된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지방의료원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선 단순한 연봉 인상보다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게 효과적이라고도 했다. 현재 서산의료원에는 의사 44명이 근무 중이며, 내과에는 7명, 신경과는 3명이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 신관이 완공되면 임상과장 수를 70~80명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정주 여건이다.
김 회장에 따르면 서산의료원은 기존 주 10세션 근무 체제를 9세션으로 줄이고, 1세션은 휴게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임금을 더 받고 일주일에 10세션 일하는 것보다, 임금이 줄어도 9세션 근무하는 걸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서산의료원은 병원 근처에 원룸과 투룸을 마련해 입주 지원을 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로 전입한 의사들에겐 아파트를 제공하고 있다. 전세자금이 필요한 경우 최대 1억 5,000만 원까지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김 회장은 “예전에 입원전담의와 계약까지 마무리했는데, 그의 아내가 서산에 백화점 없다고 해서 계약을 철회한 일이 있었다. 의사의 가족까지 고려한 정주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회고했다.

“1년에 1천억 지원하면 전체 지방의료원 자생력 갖출 수 있어”
지방의료원은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와 같다는 것이 김영완 회장의 생각이다. 뒤에서 조금만 잡아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전체 지방의료원 지원 예산으로 1년에 1,000억원만 지원해주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김 회장은 “지방의료원은 자전거를 막 타려는 아이와 같다. 뒤에서 살짝만 잡아주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굴러갈 수 있다”며 “그런데 정부는 손을 놓아버렸다. 지방의료원이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조금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1년에 1,000억원, 그 다음 해는 750억, 그 다음엔 500억원이면 충분하다”며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 정도 지원만 받아도 지방의료원은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가 한창일 땐 영웅이라 불렸지만, 그 이후에는 외면당했다는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다시 울리고 있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지방의료원을 향한 정부의 인식과 지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음 팬데믹에선 누가 최전선에 나서겠는가”라고 말했다.
- 코로나 이어 의료대란 속 분투, 멈춘 9.2 노정합의..."보건의료노동자들 폭발 직전"
- [현장에서(5)] 의료진은 떠나고, 환자는 외면...지역 중소병원 인력구조 붕괴
- 127개 병원·6만 4천여명 보건의료노동자, 총파업 예고...이유는?
- '체불임금 제로·공공의료 강화' 공약한 李정부, 지방의료원 임금체불 사태는?
- 의협 “지방의료원 예타 면제는 공공의료 왜곡…운영 효율화부터”
-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의 대가가 이건가"...임금체불 내몰린 지방의료원들
- [시민건강논평] 공공병원 확충을 ‘이념적’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 "악순환 속의 지방의료원,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국감서 따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