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선(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라포르시안]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총파업 투쟁'이란 구호가 던지는 사회적 울림은 남다르다. 2004년의 경험이 깊이 새겨진 '각인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2004년 6월 10일, '주5일제 쟁취'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국 각지에서 1만명이 넘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 고려대학교 노천극장으로 모였다. 6월 23일까지 14일간 이어진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산별 총파업 투쟁은 당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최대 이슈였다. 이를 통해 이끌어낸 보건의료산업의 첫 산별교섭 타결은 기업별노조, 기업별교섭 틀에 얽매여 있던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투쟁 역사에서 또 하나를 꼽으라면 2021년의 ‘9.2 노정합의’다. 보건의료노조가 최초로 쟁취한 노정교섭으로, 산별노조가 사회적 의제를 놓고 대정부 교섭을 벌여 보건의료산업 노동조건 개선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특히 의료공공성 강화를 통한 국민 건강권 강화라는 사회적 의제를 다루고 실행 방안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산별노조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사적인 '9.2 노정합의'는 지난 4년간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노정합의 이행협의체가 중단되면서 합의사항 이행 논의는 멈췄다. 지난 수년간 보건의료노조가 노정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윤석열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12·3 내란사태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21대 대선으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보건의료노조는 7월 24일 산별 총파업을 예고했다.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으로 노정합의 완전한 이행, 직종별 인력기준 제도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을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이달 23일까지 핵심 요구안을 놓고 교섭에 진전이 없을 때 보건의료노조 산하 127개 지부에서 6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총파업에 들어간다. 지난 15일 보건의료노조 회관에서 최희선 위원장을 만나 올해 산별교섭 요구와 총파업 투쟁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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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산별교섭에서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과 노정합의 완전한 이행을 최우선 핵심 과제로 제기했다. 보건의료노조에게 9.2 노정합의는 어떤 의미를 갖나.
= 9.2 노정합의에는 감염병대응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강화,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 같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의료,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의료정책과제들이 포함돼 있다.
9.2 노정합의는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간 노정합의였지만, 코로나를 올바로 극복하기 위한 국민적 요구와 국가적 과제, 사회적 책무를 담은 국민적 합의이다. 또한, 면담이나 정책 간담회, 정책 협의 수준을 뛰어넘어 노동조합과 정부가 마주 앉아 13차례 교섭하고, 합의서까지 작성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에 전무후무한 실질적인 노정교섭 사례이기도 하다.
- 윤석열 정부에서 노정합의 이행협의체는 어떤 식으로 중단됐나.
= 9.2 노정합의 이후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이행협의체가 가동됐고 논의가 진행됐다. 예를 들어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6개 직종(간호사,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에 대해서는 직무실태조사와 인력기준 연구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9.2 노정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협의체 운영이 지지부진해졌고, 정례적인 노정합의 이행협의체회의도 중단됐다. 보건의료노조는 9.2 노정합의 이행을 촉구하면서 2023년 2일간의 총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을 함께 했다. 때문에 이재명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남다를 것 같다.
=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성남시장 선거에 나서게 됐고, 이게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명확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기대감을 갖는 건 아니다. 1년이 넘는 의정갈등으로 의료대란을 자초한 윤석열 정부가 물러나고 들어선 새 정부이기 때문에 올바른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여 제대로 추진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 의대증원 확대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로 새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우선 순위도 의정갈등 해소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 보건의료인력 적정기준 제도화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다.
= 아직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로, 장관 임명도 되지 않은 상태이고 100대 국정과제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이다. 워낙 의정갈등이 장기화됐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와 의정갈등 해소, 의료정상화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의료정상화는 전공의 복귀나 의사인력 대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1년 365일 24시간을 환자 곁에서 환자를 돌보는 100만명의 보건의료인력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진정한 의료정상화가 이룩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보건의료인력 적정기준을 제도화하는 것인데, 역대 정부는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새 정부는 무엇보다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 올해 산별중앙교섭 관련 7가지 핵심 요구 중 하나로 '새로운 거버넌스·공론화를 통한 의대 정원 확대'를 제시했다. 새로운 거버넌스는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으로 설치되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와는 다른 논의 구조를 의미하나.
=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보건의료인력의 중장기 수급을 추계하고, 적정인력 규모를 도출하는 역할을 하는 거버넌스 기구이다.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인 2000명 의대 증원 추진으로 1년 넘게 극심한 갈등을 빚었는데, 이런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얘기하는 새로운 거버넌스는 의대 증원 문제만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선, 지역완결적 의료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 적정병상 관리,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 재원 투입과 같이 공공의료·지역의료·필수의료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올바른 의료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거버넌스이다. 굳이 거버넌스 명칭을 말하자면 <올바른 의료개혁을 위한 국민중심 공론화위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보건의료노조는 지금까지 산별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안으로 적정인력 확충을 꼽고 있다. 의료인력 문제에 왜 이렇게 집중하나.
= 환자를 돌보는 보건의료인력 부족과 근무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4만 4900명 조합원이 참가한 <2025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정말 암울하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3교대 근무자의 53.1%가 인력이 적정하지 않다고 대답했고, 63.9%가 결원이 발생해도 인력충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32.8%가 연장근무를 하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공짜노동을 하고 있고, 44.5%가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82.9%는 법적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식사시간이 10분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3.9%나 됐다.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8%가 1주에 1번 이상 식사를 걸렀고, 10명 중 1명(9.2%)은 매일(5일 이상) 식사를 거르고 있었다.
이런 근무환경에서 직장생활 만족도는 터무니없이 낮고,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직장생활 만족도를 보면 인력 수준(28.8%), 임금 수준(35.7%), 노동강도(39.7%)로 만족도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 3명 중 2명(63.4%)이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적정인력 확충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요구이다. 더군다나 보건의료업무는 환자의 생명·건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조건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 지방의료원에서 임금체불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방의료원의 경영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 코로나 시기에 전담병원 역할을 담당했던 지방의료원이 임금체불위기에 내몰려 있다. 충청북도 청주의료원에서는 지급되어야 할 상여금 중 80%인 약 10억 9천만원의 임금이 체불되었고, 전라남도 강진의료원에서는 상여금 전체 약 3억 5천만원, 강원도 속초의료원에서도 상여금 약 3억 2천만원, 부산의료원에서도 약 16억 6천만원이 체불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지방의료원 외에도 경기도의료원 등 급여일 직전에 간신히 임금체불을 막은 곳도 있고, 지금 겨우겨우 막고는 있지만 1개월~2개월 뒤 임금체불을 피할 수 없는 곳도 예상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일반진료를 중단하고 코로나 환자만 전담하다 보니 일반진료 의사들이 많이 떠났다. 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지만 의사는 돌아오지 않고 있고, 일반 진료과 의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의사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방의료원 경영위기는 더 길게 지속되고 더 크게 악화할 것이다.
- 의료대란 사태가 1년 반째 이어지고 있다. 병원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 코로나19 유행 3년 반을 지냈고, 작년 2월부터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또다시 1년 반의 의료공백 사태를 겪었다. 그러다 보니까 현장의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참아야 되는가’라는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으로 나가자 병원은 어렵다고 비상경영을 선포하면서 작년에도 무급휴직, 무급휴가, 임금동결 등을 다 감내했다. 게다가 의료대란 사태가 길어지면서 환자들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상당한 피해를 봤고, 불평불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남아있는 교수들도 전공의 인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당직근무까지 서다 보니까 예민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풀어지지 못하고 계속 꼬이면서 병원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강도가 세질 수밖에 없다. (의료대란 사태가 길어지면서) 올해 들어서 ‘더는 참을 수가 없다’라는 분노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때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지방의료원들이 이후 경영위기가 심화되고, 최근 들어서는 임금체불까지 발생하면서 ‘언제까지 참아야 되느냐’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1)] "의료체계가 무너진다는 절망감...이대로 괜찮습니까?"
[현장에서(2)] 누군가의 희생으로 버티는 공공의료, 더는 거부합니다
[현장에서(3)] 코로나 영웅이라더니...돌아온 건 자부심과 명예 아닌 임금체불
- 127개 지부에서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냈다. 7월 17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완료할 예정인데, 투표율과 찬성률을 어떻게 전망하나.
= 쟁의행위 찬반 투표가 이미 끝난 지부도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90% 투표율에 97.5% 찬성률이 나올 정도다. 휴직자 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찬반투표에서 90% 투표율이 나오는 게 굉장히 힘든데, 이렇게 투표율이 높다는 건 올해만큼은 의료현장에 누적된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투쟁 동력이 그만큼 증폭돼 있고,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보건의료노조의 쟁의행위 찬반 투표율 2021년 81.8%, 2023년 83.07%, 2024년 81.66%를 기록했다.)
7월 17일 오후 6시까지 지부별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저녁 늦게 투표 결과를 집계한다. 127개 지부의 투표율, 찬성률을 집계한 후 18일 날 오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할 예정이다. 투표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률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 7월 15일 오전에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단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오전에 이형훈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보건의료노조 회관을 방문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나.
= 이형훈 차관에게는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재개 등 현안 요구에 대해 설명했다. 오는 24일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차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차관은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이 없었고 "이행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수준에서 언급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지난 5월 14일 보건의료노조와 맺었던 '21대 대통령 선거 정책협약'에 노조의 요구가 대부분 포함돼 있고, 정책협약에 따라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또 정책협약에 담긴 9.2 노정합의 정신을 기초로 해 새로운 노정 협치 실현 등의 내용이 국정기획과제에 상당부분 들어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9.2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재가동이 핵심 요구안이고, 7대 핵심 요구를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과제에 담아서 이행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 핵심 요구라는 전달했다. 우리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문서화로 명확하게 약속을 해야 파업 철회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노정합의 이행협의체 복원 등 7대 핵심 요구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약속이 없다면 7월 24일로 예정된 산별 총파업은 그대로 진행되는 건가.
= 보건의료노조는 파업을 위한 파업을 하자는 게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내건 7대 요구는 공공의료·지역의료·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올바른 의료개혁 과제와 초고령사회 의료비 부담을 해결하고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과제를 담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이를 해결하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한다면 굳이 총파업에 나설 이유가 없다. 9.2 노정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정부의 명확한 약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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