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창(전라남도의사회 회장)

[라포르시안] “우리 지역에 필요한 것은 국립의대가 아니라 중증질환 치료 및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이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 병원을 짓는 게 아니라 상급종합병원급의 역량있는 의료기관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새로 대학병원 간판을 세우는 순간, 기존 의료기관과 지역 대학병원 모두 공멸로 갈 것이다.”
전라남도는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지역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국립의대 신설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목포시 후보로 출마하면서 대표 공약으로 ‘목포대 의과대학 설립’을 내걸었고, 당선 직후 국회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며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전남 의대 신설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국정감사와 상임위 질의를 통해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지난 8월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 전남 국립의대 신설을 반영했다.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전남도의 제1과제로 ‘국립의대 신설’이 포함되면서 전남권 의대 설립은 국가적 차원의 핵심 과제로 격상됐다. 구체적으로는 목포대학교와 순천대학교를 기반으로 한 통합 의과대학 신설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의대 정원 확보와 교육부 인가 절차 등 구체적 절차가 추진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를 두고 목포 지역 의료계는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인구 수가 줄어 20만명 붕괴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들어서면 해당 대학병원을 포함해 지역 내 종합병원과 개원가 모두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라포르시안은 전라남도 목포시 상동에서 환자들을 치료 중인 최운창 전남도의사회장을 만나 목포 지역의 의료적 특징과 국립의대 신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최운창 회장은 국립의대 신설은 해법이 아니라 공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정말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중증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며 “김윤 의원은 관련 공청회에서 광주·전남에서 상급종합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병원으로 목포한국병원, 가롤로병원, 광주기독병원을 꼽았다. 그러나 2차 병원이 난립한 전남에서 하루아침에 3차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선 김 의원도 인정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목포한국병원은 지역 최대 사업장인데, 불과 2~3km 떨어진 곳에 대학병원 부지가 있다. 그곳에 새로운 병원이 들어온다면 기존 병원도 새 병원도 함께 무너진다”며 “차라리 민간 거점병원에 과감히 투자하고 관 주도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목포 인구는 2019년 23만여 명에서 2022년 21만여 명으로 줄었고, 지난해 말에는 21만 명이 무너졌다. 이미 20만 명 이하라는 분석도 나온다”며 “이런 인구 소멸 지역에 대학병원을 세운다는 것은 공멸하자는 것과 같다”고 단언했다.
지역주민들이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의대 신설이 지역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최 회장은 “예전에 김원이 의원이 주최한 공청회 패널로 참석해 ‘지금 필요한 게 의대인지, 아니면 의대 부속병원 수준의 3차 병원인지 면밀히 봐야 한다. 도민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그 발언 이후 시의원 몇 명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그런 방안이 있을 줄 몰랐다, 무조건 의대가 들어오면 좋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국립의대 신설은 지역의료 현실을 외면한 처방이다. 인구소멸 위기 지역에 의대를 세우는 건 막대한 예산 낭비이자 기존 생태계 파괴로 이어진다”며 “기존 국립대병원이나 지역 거점병원에 과감히 투자해 필수의료·중증 진료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환자들이 떠나는 이유는 병상 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최운창 회장은 “목포에서 대학병원이 있는 광주까지 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을 찾는 이유는 병상 수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며 “목포에서 아침 KTX로 수서역에 내리면 강남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아산병원 셔틀버스가 서 있다. 오전에 검사와 진료를 마치고도 오후 5시면 내려올 수 있다. 반면 지역 병원은 ‘검사 후 며칠 뒤 오라’고 하니 환자 마음은 이미 떠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수도권 대학병원은 환자 프로세스와 동선, 당일 검사·진료 시스템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전남대병원도 지표는 괜찮지만, 프로세스 개선 투자가 부족하다”며 “환자 니즈를 맞추는 방향으로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의료 강화 방안으로 성과와 보상 연동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운영지원 시범사업’에서 전남도는 신청자 8명으로 전국 꼴찌를 기록했다”며 “전문의 취득 5년 이내 의사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서 근무 중인 의사들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 집토끼부터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복지부의 외과계 응급 복부수술 지원사업은 긍정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4시간 내 응급수술 가산 100%, 비상진료기간 추가 가산 100%, 지역 지원금 연 1~3억 원을 병원에 지급하는 구조”라며 “해당 사업에 선정은 목포기독병원은 개원 후 수술을 가장 많이 했다. 보상 구조가 동기 부여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문제도 간판을 세우는 게 아니라 성과와 보상이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의사제에 대해선 위헌적 발상이라며 강력 비난했다. 최 회장은 “10년간 의무복무를 강제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과거 공중보건장학생 제도가 실패한 사례처럼 결국 시한부 의사만 양산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강제 정책은 의사 사기 저하, 의료 질 하락, 기존 지역 병원 고사로 이어져 결국 지역 의료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자발적으로 남을 수 있게 정주 여건 개선, 파격적인 보상, 존중 문화와 법적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의사들이 자부심과 소신을 가지고 지역 필수의료에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전했다.

“의사 집단이 밥그릇 챙기기에 몰구하는 집단으로 매도돼선 안 돼”
최 회장은 “재선 임기도 어느덧 절반을 지나왔다”며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회원이 주인이고, 회원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의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민원을 해결하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회원 권익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능동적인 의사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최 회장은 “각 시군 의사회장, 이사회 임원, 사무처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소통하며 회원의 작은 어려움 하나도 제 일처럼 여기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앞으로도 같은 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의사회가 지역의 이익만 쫓는 이미지가 돼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최 회장은 “의사회가 회원 권익을 대변하는 이익 단체 역할에 충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며 "우리 스스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전문가 집단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