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고려대 노동대학원 노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라포르시안]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이 지난 14일 공식 출범했다. 전공의노조는 전공의도 노동자라는 자각을 갖고,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고 천명했다. 노조의 핵심적인 역할이 교섭을 통한 요구 관철이라는 점에 비쳐볼 때, 전공의노조 역시 쟁의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아울러 지난 의료사태에서 전공의 집단 사직을 경험했던 만큼, 전공의들이 노조 결성을 통해 파업 등의 집단행동에 전면으로 나설 것이라는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전공의노조가 극단적 수단보다는 정치·사회 전반과의 연대를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라포르시안은 보건의료노조 정책연구원장을 지낸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노동문제연구소 이주호 상임연구위원으로부터 전공의노조의 파업 가능성과 교섭 구조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들어봤다.
– 전공의노조가 출범했다. 벌써부터 전공의 파업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노조가 없을 때의 파업과 노조가 있는 상태의 파업은 전제가 다르다. 노조를 결성한 지금은 파업의 전제가 교섭이다. 전공의노조가 누구를 상대로 교섭할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정부를 상대로 한 노정교섭은 현행법상 법적 강제력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조들이 늘 ‘노정교섭 쟁취’를 말하지만, 법적 근거가 약해 파업에 들어가면 불법 논란이 생기고, 그럴 때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꺼내 들게 된다.
노사 교섭의 틀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별 교섭과 기업별 교섭이 있다. 산별 교섭의 경우 누구를 초기업 교섭의 당사자로 세울지가 관건이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나 병원단체가 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법적 강제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만 수련병원협의회가 교섭에 응해 협상을 진행하다 결렬되면 파업권이 생긴다. 기업별 교섭은 다르다. 사용자에게 교섭 응낙의무가 있다. 예컨대 전국전공의노동조합 중앙대병원 지부가 중앙대병원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청해도 교섭이 이뤄지지 않으면 합법적 파업이 가능하다.
– 전공의노조 쟁의활동이 업무개시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 지난해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일괄적인 사직을 결정했을 때 정부가 마땅한 대안이 없어 법 조항을 끌어다 쓰며 대응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노조가 만들어진 이상, 대정부 교섭을 할지 대사용자 교섭을 할지, 초기업 단위로 갈지 병원별로 갈지, 교섭단위를 어떻게 구성할지, 교섭을 어떻게 진행할지를 정하고 그 절차를 밟게 된다. 또한 파업을 하려면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선결해야 한다. 어디를 필수유지업무로 남기고, 어디에서 파업을 할지를 사전에 합의한다.
이렇게 현행 노동관계법상 정해진 절차를 따라 교섭하고 쟁의행위를 진행하면, 정부가 법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여지가 있더라도 실제로는 행사하기 어렵다. 이미 노사관계 절차를 준수해 필수유지업무를 배치하고 질서를 유지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가 필요하고, 그 절차를 밟아 가면 지난번처럼 극단적인 상황이나 극단적 정책수단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다.
– 전공의노조는 산별노조를 지향하면서도 양대 노총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 전공의노조가 산별노조를 지향하되 양대 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 같은 상급단체에 당장은 가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인식이 ‘한노총은 온건, 민노총은 급진’처럼 양분돼 있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반대편으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다. 의사라는 특수한 직역에서 어렵게 노조를 만든 초기 국면에서는 굳이 상급단체를 택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기반을 다지는 선택이 더 나을 수 있다. 상급단체 가입은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고, 지금은 내부적으로도 체력이 약하며 사회적 시선도 엇갈리니 천천히 고민해도 된다.
정치적 균형감도 중요하다. 출범식 행사에 여야 정치인을 모두 초청한 것은 바람직했다. 특정 정당 성향이 있더라도 국회는 ‘국민의 전당’이므로 양당을 모두 불러 의견을 듣는 편이 균형 잡힌 접근이다. 의사 출신 의원들을 함께 초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전공의노조가 지도부 의지만으로 추진하다 동력을 잃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전공의노조는 지난 1년 6개월간의 집단행동 경험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각’과 필요성이 훨씬 높아진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차이가 있고 균형감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전공의노조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보나.
= 물론 전공의노조는 일반적인 사회적 약자 노동조합과는 맥락이 다르다.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시선을 고려하면 ‘자기 이익만 챙긴다’는 오해를 살 위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대’가 중요하다. 의사 사회 내부만 보며 노조를 ‘활용론’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전공의노조가 환자 안전과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목표로 삼고, 시민사회·학계 등과 폭넓은 연대를 시도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출범식에서도 여야를 모두 초청했고, 다른 노동조합과도 접점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밖에서 혼자 1년 6개월 싸우다 안 되니 노조까지 만들었다’는 오해를 줄이고, ‘제대로 된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조건 개선과 환자 안전·지속가능 의료를 함께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
– 전공의노조의 향후 과제는 무엇일까.
= 노조가 있는 상태에서는 교섭이 중심이다. 교섭 단위(정부·사용자, 산별·기업별) 설정과 절차적 정당성 확보, 필수유지업무 협정 체결을 통해 합법적이고 예측 가능한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선 업무개시명령 같은 극단적 수단을 쓸 필요가 없고, 실제로도 행사하기 어렵다. 상급단체 가입 문제는 성급히 결정하지 말고, 사회적 오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천천히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정치·사회 전반과의 연대를 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가면 과거와는 다른, 성숙한 노사관계의 틀 안에서 전공의노조가 자리 잡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