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구(대한병원의사협의회 회장)

[라포르시안] “현재 국회에서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사실상 완전히 틀어막는 법안마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 수단은 법이 단체행동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노조를 통한 쟁의행위뿐이다. 의사노조 결성이야말로 의료계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은 최근 의협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투쟁에 적합한 구조가 아니며, 합법적 쟁의행위를 통해 정부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노조 조직만이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주 회장의 주장이다.

주 회장은 병원별 의사노조 결성과 기존 노조의 지속적 유지 지원을 확대하고, 전공의노조와의 협력을 통해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와 기존 의사노조 집행부가 중심이 돼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 회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병원의사협의회라는 단체의 존재를 모르는 의사들이 많았지만,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봉직의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며 “다만 의사노조 확산이 더뎠던 점은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이탈로 교수와 봉직의의 업무 부담이 급증했고, 지방 수련병원의 인력난과 경영난이 심화돼 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됐다”며 “이런 구조적 위기 해결을 위해 병원별 노조 결성과 제도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문제는 지난 20여 년간 의료사회학자들이 설계한 정책 방향을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유지해 온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고, 이로 인해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지역의료가 몰락했다”며 “병원의사협의회는 이미 독립적 의료인력추계기구 설치, 새로운 수련 시스템 도입, 의료사고의 비형사처벌화, 한국 실정에 맞는 지불제도 개선 등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의사 목소리를 정책 파트너로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아가면서 의료 현장에선 의사노조가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주 회장은 “병원의사노조는 이미 등록을 마치고 활동을 유지하고 있으며, 보직이 있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임단협과 조합원 확대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아주대병원, 인제의대, 보건복지부 산하 종합병원 등 여러 기관에서 노조 활동이 진행 중이며, 각 병원 단위의 설립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흐름은 전국 단위 의사노조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이 가운데 병원의사노조가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 교수노조와 개원의노조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가 단일보험체계라는 점에 비쳐볼 때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개원의노조 설립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사에 대한 정부의 제재가 오히려 의사노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신구 회장은 “파업 시 해고나 전공의 사직 같은 사안의 핵심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제도”라며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필수의료유지법은 노조가 아닌 단체의 집단행동에 징역형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노조 결성을 유도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전공의 사직 당시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파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던 발언에는, 반대로 노조라면 인정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결국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노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에서 노조가 있었더라면 의료공백 사태가 극단적으로 가지 않았을 것으로 봤다. 주 회장은 “노조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파괴적 투쟁을 막기 위한 합의된 제도적 장치이며, 파업 또한 합의를 전제로 한 민주적 절차”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노조”라고 말했다.

병원의사협의회가 의료계 내부 중재자로서, 또 국민과의 소통 창구로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주 회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세대 갈등이 의료계 단합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봉직의가 개원의·교수·전공의를 잇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전공의노조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젊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의료계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의사협의회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의료시스템은 특정 직역의 희생 없이 지속가능하고, 국민이 안전한 시스템”이라며 “정부는 원가 기반의 적정수가를 도입하고, 의료계 현실을 반영한 인력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의사를 정책 파트너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한, 대한민국의 필수의료는 회복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의사들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피해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간소화의 위험성을 국민 눈높이에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회장은 “병원의사협의회는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 인식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국회와 언론에 제시할 예정”이라며 “국민 입장에서 설명하는 방식의 변화가 의료계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고 전했다.

그는 “병원의사협의회는 병원별 노조 결성과 전국의사노조 준비위원회 출범을 병행 추진하고, 근무환경 개선과 보험공제, 실태조사 등 실질적 지원을 지속할 계획”이라며 "의사노조 가입과 병원의사협의회 활동 참여가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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