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주엽(법무법인 율촌 변호사·Medtech & Bio 팀장)  

[라포르시안] 미국 의료기기산업협회(AdvaMed)의 윤리규정은 서두의 FAQ(자주 묻는 질문)에서 다음과 같이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의약품과 생물학적 제제는 화학적 작용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미치며, 의료 전문가의 직접적인 감독이나 의료기기회사 직원의 안내 없이도 환자가 혼자 복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의료기기는 복잡한 도구·장비·기술을 포함하고 의료 전문가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약산업과는 다른 윤리규정을 제정하게 됐다.”

AdvaMed는 이처럼 의료기기 특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제약산업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나 수술실 내 지원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정경쟁규약은 쌍벌제 시행 이후 의약품 거래 관련 공정경쟁규약을 차용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교육훈련이나 견본품 제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규정이 의약품 공정경쟁규약과 동일하고 교육훈련 규정조차도 제약산업의 것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의료기기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는 공정경쟁규약만의 문제가 아니라 쌍벌제 규정 자체가 약사법과 의료기기법의 구조적 유사성에서 비롯된 한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입법적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미국 의료기기산업협회(AdvaMed)의 FAQ 1번
미국 의료기기산업협회(AdvaMed)의 윤리규정 FAQ 1번

또한 AdvaMed의 윤리규정은 의료기기 기업이 자사 제품에 대한 의료기술(Medical Technologies)을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교육·훈련시킬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훈련을 시행할 경우 적정한 범위 내에서 교통비나 식음료 제공이 가능하고, 해당 보건의료 전문가의 거주 지역 이외에서도 교육훈련을 실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훈련뿐 아니라 의료기기 기업이 보건의료 전문가들로부터 제품의 품질이나 회사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거나 시설 견학·제품 개발 등을 목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회의나 행사를 개최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제품설명회 형식의 회의만을 인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정경쟁규약에 비해 훨씬 유연한 접근 방식이다. 즉 기업이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의료기기산업 단체인 MedTech Europe의 윤리규정은 미국처럼 제약 규약과의 차이나 의료기기 기업의 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의료기기 기업이 적절한 방식을 통해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훈련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회사 주최 행사가 허용됨을 전제로 보건의료 전문가가 거주하는 지역 이외, 특히 유럽연합(EU) 외 지역에서도 교육훈련이나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일본의료기기공업회·일본의료영상시스템공업협회 등 여러 의료기기 단체가 공동으로 ‘의료기기업공정취인협의회’를 구성해 한국과 유사하게 ‘공정경쟁규약’이라는 명칭으로 규정을 제정하고 공정취인위원회(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일본 규약은 총 12개 조문·6개 시행규칙으로 매우 간결하며, 의료기기 거래를 부당하게 유인할 목적으로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식음료 상한이나 강연·자문료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또한 의료기기의 적정한 사용을 위한 서비스, 정보, 자료, 설명 등 제공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그 외 세부 사항은 업계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있다. 결국 일본의 규약은 ‘부당한 고객 유인은 금지된다’는 원칙만을 명시하고 구체적인 실행 기준은 의료기기 산업계의 자율성에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아시아·태평양지역 의료기기산업을 대표하는 APACMed가 제정한 윤리강령에는 회원사가 주최하는 교육훈련이나 제품설명회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고 있다. 해당 규정은 교육훈련에 적합한 장소 선정, 검소한 범위 내에서의 숙식 제공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금액 기준은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게 커 AdvaMed나 MedTech Europe의 규정에서 허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행사 개최 가능성을 사실상 원천 봉쇄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판매촉진을 위한 경제적 이익 제공과 의료기기 개발 또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행사는 명확히 구분돼야 하고, 이러한 행사에서 사회 통념상 허용 가능한 범위의 교통비나 식음료 지원까지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의료기기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향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같은 문제 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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